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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경영

케이크 믹스에 달걀을 넣는 이유

by planner_l 2023.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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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모두가 아는 것처럼, 사람들의 소비와 구매 결정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결과가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을 피하고 싶어서 구매를 하기도, 하지 않기도 한다. 이번 글에서는 이런 사례를 다뤄보려고 한다.

케이크 믹스가 팔리지 않은 이유

케이크 믹스는 20년이 넘도록 성공하지 못했다.

케이크를 만드는 과정은 두 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 케이크 시트를 만든다. 두 번째 케이크 시트에 크림을 바른다. 케이크 시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달걀을 풀고 버터를 녹이고 채 쳐 곱게 만든 밀가루를 준비해야 한다. 게다가 오븐의 온도가 정확하지 않거나 반죽이 고르지 않다면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케이크가 부풀지 않을 수도 있다. 이렇게 오래 걸리고 번거롭기 때문에 케이크 시트를 만드는 과정을 혁신적으로 줄여주는 케이크 믹스가 1929년 처음 출시되었을 때 당연히 잘 팔릴 거라고 예상했지만 생각만큼 잘 팔리지 않았다.

만일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소비하려면 비용과 시간을 줄여주는 케이크 믹스를 사지 않을 리가 없었다. 맛에는 문제가 없었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봤을 때 사람들은 케이크 믹스로 만든 케이크 역시 좋아했다. 그렇다면 대체 왜 팔리지 않았을까?

케이크 믹스가 팔리지 않은 이유

문제는 케이크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였다. 케이크는 끼니를 해결하기 위한 메뉴가 아니다. 보통은 누군가를 축하하기 위해, 어떤 성과나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케이크를 굽는다.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어떤 수고를 감수하는 것은 케이크의 존재를 더 빛나게 만드는 것이다. 처음 케이크 믹스가 출시되었을 때 케이크 믹스를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성의 없는 행동으로 인식되었다. 케이크 믹스를 사용하는 것은 "나는 직접 케이크를 만드는 수고를 감수할 만큼 당신을 아끼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겨졌다. 당시 주부들은 케이크믹스를 사용했다는 걸 가족들이 알게 되면 서운해하거나 비난하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한다.

 

문제의 해결

어니스트 딕터의 등장

1950년대에 케이크 믹스를 만들던 대표적인 회사 제너럴밀스(General Mills)는 맛의 동일성, 시간과 비용의 효율성만으로 소비자들에게 호소할 수 없다는 걸 인정했다. 그러다가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오스트리아 출신 심리학자 어니스트 딕터(Ernest Dichter)에게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의뢰하였다. 딕터의 심리학적 방법론에서 탄생한 가장 유명한 마케팅 비법이 바로 '심층면접(focus group interview)'이다. 심층면접은 조사 대상자들이 모여 토론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더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이전까지의 설문조사나 소비자 투표 등의 정량조사와는 확연한 대조를 이루는 방법이었다. 딕터는 정량조사로는 행동 자체를 밝힐 수는 있지만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밝히려면 이와 같은 심층면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딕터는 빵 굽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면접을 진행했다.

문제점의 발견과 해결

딕터는 사람들에게 케이크 믹스 사용을 꺼리는 이유를 물어보았고 정성을 들이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파악했다. 그리고 믹스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을 찾아냈다. 바로 케이크를 만드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자부심'을 간과한 것이다. 믹스에 물만 추가하여 오븐에 구우면 된다는 점은 편리해 보였지만, 이걸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수고로운) 베이킹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못했다. 딕터가 제시한 해결책은 믹스에서 달걀가루를 빼라는 것이었다. 제너럴밀스(General Mills)는 딕터의 조언에 따라 믹스의 원재료에서 분말 달걀을 없애고 레시피에 달걀을 추가하라고 소비자에게 요구했고 사용자들은 달걀을 넣는 행위를 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베이킹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매출은 급증했고 지금까지도 대부분의 케이크 믹스가 '달걀을 추가하라'라고 요구하고 있다.

 

때로는 혁신이 감정에 부딪힌다

처음 케이크 믹스를 만들었던 기업가는 자신의 아이디어와 상품이 미국의 주부들의 고생을 덜어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 불편을 해소해 줄 수 있는 혁신적인 상품이 베이킹 산업을 판도를 바꿀 것이라 예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믹스를 사용하는 것이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는 두려운 감정 때문에 시장을 장악하는 데 25년이 넘게 걸렸다. 제품이 아무리 완벽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그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부정적 감정을 보완해 줄 수 있다면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의 심리적 만족감까지 고려해야 하다니 너무 어렵게 느껴지긴 한다.

 

(만일 에드워드 버네이스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타개했을까? 일하는 여성을 위해 조리시간을 단축해야 한다, 라거나 여권 신장을 위해 베이킹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요하면 안 된다,라고 여론부터 조성하지 않았을까 싶다. )

 

※ 참고문헌 : 인간 본성 불패의 법칙(노런 노드 그런, 데이비드 숀설), 뇌를 훔치는 사람들(데이비드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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