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건 많지 않다.
난 그들의 인싸놀이에 끼고 싶지도 않고 당연히 찐따가 되어 그들의 장난감이 되고 싶지도 않다. 그저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이 곳을 다니다가 때가 되면 탈출하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도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뭔가 흥미로워 보이는 순간 그게 그들에게 좋아 보이든 나빠 보이든 난 도망칠 곳이 없게 된다. 그들이 나를 좋게(?) 봐서 인싸에 껴준다면 난 찐따를 괴롭히는 것에 동참해야 한다. 난 차라리 찐따가 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상태는 찐따라기보다는 찐따와 무관심 대상의 그 어느 경계에 걸쳐 있다. 나는 학교에서 이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다.
다른 초등학교의 아이들이 많이 오니까 좋은 아이들, 나와 좀 맞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실상은 처참했다. 이 중학교에는 인근의 한 초등학교에서 60% 이상이 진학을 하는데 이 초등학교에서 이미 일베와 여혐, 계급 놀이에 찌든 아이들이 다수였다. 그들이 절대다수를 이루며 이 중학교에서 주류를 형성하고 그들이 이 학교의 문화를 주도한다. 지금 내가 있는 반에 ㅁㅁ이라는 아이는 이미 그 초등학교에서부터 꾸준히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였다. 그 초등학교에서 그대로 중학교로 올라오니 ㅁㅁ는 중학교에서도 그 괴롭힘을 그대로 당한다. ㅁㅁ가 지나가면 여자아이들이 흘겨본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ㅁㅁ랑 눈 마주쳤어! 짜증나!”라고 소리친다. ㅁㅁ가 어쩌다가 어떤 여자아이의 물건을 만지게 되거나 하면 “내 물건에 ㅁㅁ 묻었어!“라며 소리친다. 더 잔인한 건 그렇게 괴롭히는 아이를 반에서 부회장으로 뽑아서 계속 조롱한다는 것이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ㅁㅁ는 어딘가 조금 부족해 보이는데 ㅁㅁ가 교실에 들어오는데 아이들은 “여기 00반 아니야, 너네 교실 아니야, 너 잘못 들어왔어”라고 하면 그 말을 믿고 진짜로 나간다. 그래서 수업시간이 시작되도 들어오지 않아 선생님과 아이들이 찾아나서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수업시간에 ㅁㅁ에게 일베용어를 크게 말하라고 시키고 그대로 하면 선생님에게 ㅁㅁ가 혼난다. 그걸 보며 아이들이 키득댄다. 선생님은 ㅁㅁ가 어딘가 부족한 아이라는 알 텐데, 아이들이 ㅁㅁ가 혼날 때 키득대는 걸 보면 아, 이 아이들이 뭔가 꾸며서 ㅁㅁ가 혼난 거구나 하고 눈치를 챌 텐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냥 ㅁㅁ만 혼나고 그 상황은 끝난다.
어느 때는 선생님들도 ㅁㅁ를 괴롭히는 데 한몫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ㅁㅁ가 어딘가 부족한 건 내가 관찰한 결과 거의 확실했다. 그럼 선생님들도 그 사실을 서로 공유했을 것이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걸 공유해야 하는 이유는 그 아이에게 조금 더 특별하게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조건적인 배려는 아니더라도 그 아이를 보호해줘야 하는 게 선생님들의 역할 아닌가? 그런데 수업시간에 뭔가 포인트가 벗어난 행동을 하면 어느 과목 선생님은 진심으로 ㅁㅁ를 미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ㅁㅁ를 혼내고 비난한다. 그럼 아이들은 더 자신감을 얻어 쉬는 시간에 ㅁㅁ를 더 괴롭힌다. ㅁㅁ의 물건을 뺏어서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올려다 놓는다든지 ㅁㅁ의 학용품을 망가뜨린다. 지나가는 데 다리를 걸고 어눌한 ㅁㅁ의 말투를 따라하며 배를 잡고 웃겨 죽는다. ㅁㅁ에게 엄마의 특정 신체부위를 본 적 있냐고 물어본다.
이렇게 누군가 한명을 여러 명이 괴롭히는 이 상황을 어디 유튜브에서나 이런 일이 있다더라 들어만 봤지 실제로 목격하니 어리둥절했다. 그 초등학교에서 온 아이들은 ㅁㅁ를 괴롭히는 게 너무나 익숙해보였고 그것에 죄책감을 가지거나 거리낌이 전혀 없었다. ㅁㅁ를 괴롭히지 않는 기타 초등학교의 아이들도 하나 둘 거기에 동참했다. 그것이 이 곳의 문화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주류에 속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니까. 나에게도 ㅁㅁ를 괴롭혀야 하는 상황이 주어질까봐 너무나 두려웠다. 용기가 없어 그만하라고 말은 못해도 내가 그런 짓을 하고 싶진 않았다. 아슬아슬한 나날이 계속되며 이제는 내가 ㅁㅁ를 괴롭히는 상황이 아니라 내가 저 괴롭힘을 당하게 될까 두렵다. 나는 이 곳에서 어떻게 지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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